전시기간 | 2010-07-17 ~ 2010-09-26 |
장소 | 시안미술관 4전시실 |
주최 | 시안미술관 |
주관 | 시안미술관 |
후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영천시 |
작가 | 정은주 |
담당 | 김현민 |
Jeong, Eun Ju - 사물을 거부하는 색들
사물을 거부하는 오브제로서 색
강선학 (미술평론)
현대사회의 질곡은 재현이거나 재현이 거부되면서 생기는 시물라크르의 부유하는 이미지들이며, 이들이 우리를 지배한다는 것이다. 순수도 가상도 아닌 비릿한 복제들이 사실을 대신하고 현실을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순수는 때로 우리 시대를 되돌아보게 한다.
정은주의 작업이 그렇다. 단색 회화의 연장으로, 그 후속세대로도 볼 수 있지만 그런 부류로 계열화할 필요는 없다. 정은주의 작업은 색이 전면적으로 부각되지만 색상을 통한 어떤 재현도 거부하면서 새로운 감각체이기를 꿈꾼다. 어떤 재현도 거부하는 것은 이 세상에서는 혼돈이지만 자기질서를 보이는 다른 세계이기도 하다. 색은 사물의 형태를 풍부하게 한다. 그런데 그의 사물은 색의 덩어리이지만 사물이기를 거부하고 형태를 보완하려 하지 않는다. 색 자신이고자 한다. 그러면서 새로운 감각체라는 측면에서 그의 색은 사물이 되고 재현이 아닌 세계로 나아가게 한다.
순수는 의심받는다. 의심받게 하면서 수없이 많은 잡종들이 득세하는 것이 포스터모더니즘의 현상이다. 그의 작업은 이쯤에서 곰곰이 따져 물어야 할 것들을 보여준다.
그의 작품은 우선 색상의 덩어리로 다가온다. 몇 가지 색상을 사용할 때 조차 단순 명료하다. 어떤 다른 연상이나 형태감이 생성될 여지를 주지 않는다. 캔버스 위에 생성된 색면, 평면같다는 인상도 그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작품으로 시선이 옮겨지는, 평면의 색상이라는 그런 인상을 받는 순간 작은 색상의 차이가 시선을 정면으로 치미며 다가온다. 시선을 조금 움직여본다. 방형의 구조물임을 금방 목격하게 된다. 두 개나 세 개의 육면체의 구조가 겹쳐져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색상의 차이는 색료의 차이가 아니라 육면체의 구조에서 만들어지는 그림자나 면의 의해 드러나는 색가의 차이임을 알게 된다.
육면체의 구조물이 직선의 단호한 면과 선을 만들어내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45도의 사선을 만들어내고 있음도 확인하게 된다. 육면체의 한 면을 45도로 깎아서 사선을 덧붙였다. 그것은 구조에 대한 배려이지만 구조를 운동감으로 이끌어가는 전략이기도 하다. 이 단순한 사선 하나가 방형의 단순함에 섬세한 운동이나 움직임을 생성하고, 시선의 차이를 만들고 미묘한 색상차를 이끌어낸다. 잠재된 운동과 색상이 그곳에서 연유하는 것이다.
평면성이 강하게 드러나는 색면은 45도의 사선에 의해 시선의 방향을 꺾고 음영이 입체감을 환기시킨다. 순간 입체와 평면을 오가는 시선의 혼란과 양면성을 가진 독특한 사물을 만나게 된다. 단색조의 구조물은 사물도 대상도 아닌 색 자체였다가 사선과 그늘에 의해 울림을 가지며, 자체의 울림으로 육면체의 구조를 가시화하고 운동을 생성하면서 어떤 것으로 나아가는 시선이나 관심을 자기지시로 내면화시키고 있음을 보게 한다. 그것은 오브제로서 색상이라는 독특한 체험이다.
그러나 어느 작품에서나 자기지시성이 너무 강하게 드러난다. 그런 면에서 작품 간의 변별성이 떨어지고 변화를 읽어내려는 다양성을 기대하기 힘들게 한다. 작가 입장에서는 자기지시와 자기기술의 반복이라는 느슨함이 없지 않을 것이고, 자기검열의 삼엄함 또한 없지 않을 것이다. 자기방법에의 몰입이 때로는 의미 없는 반복을 부르고 내재회라는 말로 자신을 방어하기도 할 것이다. 작업과 발표 사이에서 자신의 조절과 관리가 필요한 부분이다. 그러나 관리가 아니라 작품의 적실함을 얻는 것, 그것을 표현하고 소통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더 큰 근본적 문제일 것이다. 자기도식과 모방이 뻔히 들여다 보이는, 구조적 허약성이 쉽게 드러날 수 있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그런 위험이 보이는 사각의 구조물 안에서 구조 자체로 그늘과 요철로 면을 만들어낸다. 사선으로 귀퉁이의 면을 잘라냄으로 시선의 방향에 변화를 주고, 작품 자체의 구조가 하나의 입체로서 가시화되기도 하고 평면의 잠재된 구조에 기여하게도 한다. 작가의 섬세한 감성을 읽게 하는 부분이다.
사선의 채용은 단순한 구조에 변화의 미묘함을 가져온다. 벽면과 공간에 대응하고, 자신의 선이 내면으로부터 공간을 생성하는 특징을 보여준다. 어떤 외부자극 없이 자체적 논리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그런 면에서 그의 작업은 지칭대상이 전제된 사물이기를 거부하는 것이며, 색으로 대상을 옮기기보다 색 자체로서 있고자 한다. 형상을 띠고 있는 사물이지만 어떤 것에 대한 사물이 아닌, 외부 지향 없이 자신을 보일 뿐이다. 자신 외 어떤 시선도 차단한다.
이런 특징이 미니멀리즘의 한 경향을 일정 부분 공유하게 하지만 장소성과 제시된 사물 자체가 중요한 미니멀의 논리와 차이를 갖는다. 도리어 그의 작품에는 모더니즘의 비장소성의 특징이 여전히 견지되고 단색의 색상들이 배열되어 있을 뿐이다. 균일화된 색면과 구조적인 층차가 가져오는 그림자에 의한 변화와 선들의 교차에서 입체감이 드러나는 작품은 가시와 비가시의 이중성을 함축하는데 더 치중해 있다.
잡종과 수다가 분필가루처럼 날릴 때조차 미학적 차원으로 운위되어야 하는 시대를 그의 작품은 침묵 사이의 소리, 움직이지 않은 사이에 드러나는 움직임, 단호한 직선 사이에서 세련된 미끄러지기, 중첩과 사선으로 섬세한 교응을 생성하는 구성체로서 대응하고 있다. 교차되지 않는 선들의 맹렬한 자기구성, 사물이기를 거부하는 오브제로서 색, 이런 말들이 그의 작업에 어울리지만 의미(말)이기를 거절하는 그의 색상들은 감각체로서 오브제이기를 요청한다.
전시기간 | 2010-07-17 ~ 2010-09-26 |
장소 | 시안미술관 4전시실 |
주최 | 시안미술관 |
주관 | 시안미술관 |
후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영천시 |
작가 | 정은주 |
담당 | 김현민 |
Jeong, Eun Ju - 사물을 거부하는 색들
사물을 거부하는 오브제로서 색
강선학 (미술평론)
현대사회의 질곡은 재현이거나 재현이 거부되면서 생기는 시물라크르의 부유하는 이미지들이며, 이들이 우리를 지배한다는 것이다. 순수도 가상도 아닌 비릿한 복제들이 사실을 대신하고 현실을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순수는 때로 우리 시대를 되돌아보게 한다.
정은주의 작업이 그렇다. 단색 회화의 연장으로, 그 후속세대로도 볼 수 있지만 그런 부류로 계열화할 필요는 없다. 정은주의 작업은 색이 전면적으로 부각되지만 색상을 통한 어떤 재현도 거부하면서 새로운 감각체이기를 꿈꾼다. 어떤 재현도 거부하는 것은 이 세상에서는 혼돈이지만 자기질서를 보이는 다른 세계이기도 하다. 색은 사물의 형태를 풍부하게 한다. 그런데 그의 사물은 색의 덩어리이지만 사물이기를 거부하고 형태를 보완하려 하지 않는다. 색 자신이고자 한다. 그러면서 새로운 감각체라는 측면에서 그의 색은 사물이 되고 재현이 아닌 세계로 나아가게 한다.
순수는 의심받는다. 의심받게 하면서 수없이 많은 잡종들이 득세하는 것이 포스터모더니즘의 현상이다. 그의 작업은 이쯤에서 곰곰이 따져 물어야 할 것들을 보여준다.
그의 작품은 우선 색상의 덩어리로 다가온다. 몇 가지 색상을 사용할 때 조차 단순 명료하다. 어떤 다른 연상이나 형태감이 생성될 여지를 주지 않는다. 캔버스 위에 생성된 색면, 평면같다는 인상도 그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작품으로 시선이 옮겨지는, 평면의 색상이라는 그런 인상을 받는 순간 작은 색상의 차이가 시선을 정면으로 치미며 다가온다. 시선을 조금 움직여본다. 방형의 구조물임을 금방 목격하게 된다. 두 개나 세 개의 육면체의 구조가 겹쳐져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색상의 차이는 색료의 차이가 아니라 육면체의 구조에서 만들어지는 그림자나 면의 의해 드러나는 색가의 차이임을 알게 된다.
육면체의 구조물이 직선의 단호한 면과 선을 만들어내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45도의 사선을 만들어내고 있음도 확인하게 된다. 육면체의 한 면을 45도로 깎아서 사선을 덧붙였다. 그것은 구조에 대한 배려이지만 구조를 운동감으로 이끌어가는 전략이기도 하다. 이 단순한 사선 하나가 방형의 단순함에 섬세한 운동이나 움직임을 생성하고, 시선의 차이를 만들고 미묘한 색상차를 이끌어낸다. 잠재된 운동과 색상이 그곳에서 연유하는 것이다.
평면성이 강하게 드러나는 색면은 45도의 사선에 의해 시선의 방향을 꺾고 음영이 입체감을 환기시킨다. 순간 입체와 평면을 오가는 시선의 혼란과 양면성을 가진 독특한 사물을 만나게 된다. 단색조의 구조물은 사물도 대상도 아닌 색 자체였다가 사선과 그늘에 의해 울림을 가지며, 자체의 울림으로 육면체의 구조를 가시화하고 운동을 생성하면서 어떤 것으로 나아가는 시선이나 관심을 자기지시로 내면화시키고 있음을 보게 한다. 그것은 오브제로서 색상이라는 독특한 체험이다.
그러나 어느 작품에서나 자기지시성이 너무 강하게 드러난다. 그런 면에서 작품 간의 변별성이 떨어지고 변화를 읽어내려는 다양성을 기대하기 힘들게 한다. 작가 입장에서는 자기지시와 자기기술의 반복이라는 느슨함이 없지 않을 것이고, 자기검열의 삼엄함 또한 없지 않을 것이다. 자기방법에의 몰입이 때로는 의미 없는 반복을 부르고 내재회라는 말로 자신을 방어하기도 할 것이다. 작업과 발표 사이에서 자신의 조절과 관리가 필요한 부분이다. 그러나 관리가 아니라 작품의 적실함을 얻는 것, 그것을 표현하고 소통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더 큰 근본적 문제일 것이다. 자기도식과 모방이 뻔히 들여다 보이는, 구조적 허약성이 쉽게 드러날 수 있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그런 위험이 보이는 사각의 구조물 안에서 구조 자체로 그늘과 요철로 면을 만들어낸다. 사선으로 귀퉁이의 면을 잘라냄으로 시선의 방향에 변화를 주고, 작품 자체의 구조가 하나의 입체로서 가시화되기도 하고 평면의 잠재된 구조에 기여하게도 한다. 작가의 섬세한 감성을 읽게 하는 부분이다.
사선의 채용은 단순한 구조에 변화의 미묘함을 가져온다. 벽면과 공간에 대응하고, 자신의 선이 내면으로부터 공간을 생성하는 특징을 보여준다. 어떤 외부자극 없이 자체적 논리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그런 면에서 그의 작업은 지칭대상이 전제된 사물이기를 거부하는 것이며, 색으로 대상을 옮기기보다 색 자체로서 있고자 한다. 형상을 띠고 있는 사물이지만 어떤 것에 대한 사물이 아닌, 외부 지향 없이 자신을 보일 뿐이다. 자신 외 어떤 시선도 차단한다.
이런 특징이 미니멀리즘의 한 경향을 일정 부분 공유하게 하지만 장소성과 제시된 사물 자체가 중요한 미니멀의 논리와 차이를 갖는다. 도리어 그의 작품에는 모더니즘의 비장소성의 특징이 여전히 견지되고 단색의 색상들이 배열되어 있을 뿐이다. 균일화된 색면과 구조적인 층차가 가져오는 그림자에 의한 변화와 선들의 교차에서 입체감이 드러나는 작품은 가시와 비가시의 이중성을 함축하는데 더 치중해 있다.
잡종과 수다가 분필가루처럼 날릴 때조차 미학적 차원으로 운위되어야 하는 시대를 그의 작품은 침묵 사이의 소리, 움직이지 않은 사이에 드러나는 움직임, 단호한 직선 사이에서 세련된 미끄러지기, 중첩과 사선으로 섬세한 교응을 생성하는 구성체로서 대응하고 있다. 교차되지 않는 선들의 맹렬한 자기구성, 사물이기를 거부하는 오브제로서 색, 이런 말들이 그의 작업에 어울리지만 의미(말)이기를 거절하는 그의 색상들은 감각체로서 오브제이기를 요청한다.